트랙 B 종교·철학 · B0 방법론과 범주 통제

B0-2과학철학 기초 · 반증, 패러다임, 연구 프로그램

한 이론을 포퍼의 반증, 쿤의 패러다임, 라카토슈의 연구 프로그램 세 모형으로 각각 평가해 보고, 결과가 왜 달라지는지 말할 수 있게 한다.

Jun Lee종교·철학입문검토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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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정 원전

  • Karl Popper, 『Conjectures and Refutations』 1장 "Science: Conjectures and Refutations" · Routledge 1963 · 영어
  • Thomas S. Kuhn, 『The Structure of Scientific Revolutions』 2장 및 5장 ·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62 · 영어
  • Imre Lakatos, 『Falsification and the Methodology of Scientific Research Programmes』 1절, 3절 · Criticism and the Growth of Knowle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70 · 영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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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 상황

한 이론을 두고 "그것은 과학인가"라고 물을 때 우리는 사실 서로 다른 세 질문을 섞어 던지고 있다. 첫째, 이 이론은 틀릴 수 있는 방식을 가지고 있는가. 둘째, 이 이론을 다루는 공동체는 무엇을 당연하게 여기고 무엇을 아직 풀리지 않은 문제로 세는가. 셋째, 이 이론을 중심으로 한 연구의 흐름은 새로운 사실을 예측하며 뻗어 나가는가, 아니면 반례를 막는 데만 힘을 쓰는가.

통일장이론은 이 세 질문이 서로 다른 답을 내놓는 전형적인 사례다. 대통일 에너지 척도는 101610^{16} GeV 근처로 추정되고, 이는 현재 가속기가 닿는 에너지보다 열세 자릿수쯤 높다. 그 척도의 물리를 직접 재는 실험은 없다. 그런데도 양성자 수명의 하한은 실제로 측정되고 있고, 그 측정값이 구체적인 모형을 하나씩 지워 왔다 [1]. 같은 이론이 첫째 질문에서는 "직접 검증이 불가능하다"는 판정을 받고, 동시에 "이미 일부가 반증되었다"는 판정을 받는다.

이 어긋남은 이론의 문제가 아니라 질문의 문제다. 세 질문은 서로 다른 평가 모형에서 나오며, 어느 모형을 쓰는지 밝히지 않은 채 "과학인가"를 묻는 것은 범주 오류에 가깝다. 이 단원의 목표는 세 모형의 이름을 외우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이론을 세 모형으로 각각 한 번씩 평가해 보고 결과가 갈리는 지점을 지목하는 것이다.

원전 발췌

어떤 상상 가능한 사건으로도 반박되지 않는 이론은 과학적이지 않다. 반박 불가능성은 흔히 생각하듯 이론의 미덕이 아니라 악덕이다.

영어

A theory which is not refutable by any conceivable event is non-scientific. Irrefutability is not a virtue of a theory (as people often think) but a vice.

Karl Popper, 『Conjectures and Refutations』 1장· Routledge 1963

포퍼의 이 문장은 검증이 아니라 금지에 무게를 둔다 [2]. 이론이 말해 주는 것은 무엇이 일어나는가가 아니라 무엇이 일어나지 않는가라는 것이다.

정상 과학, 곧 대부분의 과학자가 거의 모든 시간을 쏟는 활동은 과학자 공동체가 세계가 어떠한지를 이미 안다는 가정 위에 서 있다.

영어

Normal science, the activity in which most scientists inevitably spend almost all their time, is predicated on the assumption that the scientific community knows what the world is like.

Thomas S. Kuhn, 『The Structure of Scientific Revolutions』 2장·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62

쿤은 실제 연구의 대부분이 이론을 시험하는 일이 아니라 이미 받아들인 틀 안에서 퍼즐을 푸는 일이라고 본다 [3]. 이 서술이 옳다면 반증은 일상적 사건이 아니라 예외적 사건이다.

평가의 기본 단위는 고립된 이론이나 이론들의 묶음이 아니라 연구 프로그램이어야 한다.

영어

The basic unit of appraisal must be not an isolated theory or conjunction of theories but rather a research programme.

Imre Lakatos, 『Falsification and the Methodology of Scientific Research Programmes』 3절· Criticism and the Growth of Knowle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70

논증 재구성

포퍼의 논증.

  1. 경험적 내용을 가진 문장은 가능한 관찰 결과들 가운데 어떤 것을 금지한다.
  2. 아무것도 금지하지 않는 문장은 세계가 어떠한지에 대해 아무 정보도 주지 않는다.
  3. 어떤 사건으로도 반박될 수 없는 이론은 아무것도 금지하지 않는다.
  4. 따라서 반박 불가능성은 이론의 강점이 아니라 경험적 내용이 비어 있다는 표시다.
  5. 그러므로 과학과 비과학을 가르는 기준은 확증의 양이 아니라 반증 가능성이다.

쿤의 반대 논증.

  1. 관측은 이론에 물들어 있어, 무엇을 반례로 셀지는 이미 받아들인 틀이 정한다.
  2. 실제 연구사에서 반례는 이론을 버리는 계기가 아니라 풀어야 할 퍼즐로 분류되는 경우가 훨씬 많다.
  3. 틀이 바뀌는 것은 반례가 쌓여서가 아니라, 반례를 더 잘 다루는 다른 틀이 나타났을 때다.
  4. 따라서 반증은 과학의 일상적 논리가 아니라 위기 국면에 국한된 현상이다.

라카토슈의 종합.

  1. 어떤 이론도 홀로 관측과 마주하지 않는다. 보조 가설과 초기 조건, 측정 이론이 함께 쓰인다.
  2. 그러므로 예측이 어긋났을 때 무엇을 버릴지는 논리만으로 정해지지 않는다.
  3. 평가의 단위는 낱개 이론이 아니라, 건드리지 않기로 한 견고한 핵과 수정이 허용되는 보호대로 이루어진 연구 프로그램이다.
  4. 보호대를 고친 결과가 이전에 알려지지 않은 사실을 예측하고 그중 일부가 실제로 확인되면 그 프로그램은 전진적이다.
  5. 수정이 이미 알려진 반례를 흡수하는 일만 하면 그 프로그램은 퇴행적이다.
  6. 그러므로 과학성은 한 시점에 이론이 가진 성질이 아니라, 시간에 걸친 프로그램의 방향이다.

세 논증은 서로를 반박하는 관계가 아니다. 포퍼는 이론이 무엇을 금지하는지를 묻고, 쿤은 공동체가 무엇을 문제로 세는지를 묻고, 라카토슈는 수정의 이력이 어느 쪽을 향하는지를 묻는다. 물음이 다르므로 답이 갈리는 것은 결함이 아니다.

반론과 재반론

반론 1. 라카토슈의 기준은 사후적이다. 전진인지 퇴행인지는 수십 년이 지나야 판정되므로, 지금 진행 중인 연구에 대해서는 아무 지침도 주지 못한다.

재반론. 지적 자체는 옳다. 다만 기준의 쓸모가 실시간 판정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프로그램을 수행하는 쪽에 "이번 수정이 무엇을 새로 예측하는가"라는 물음을 강제하는 것만으로도 기준은 작동한다. 대답이 "아무것도 새로 예측하지 않고 다만 어긋난 결과를 허용한다"라면, 판정을 기다릴 필요 없이 그 수정이 퇴행적이라는 것을 그 자리에서 알 수 있다.

반론 2. 쿤의 서술은 결국 상대주의로 간다. 패러다임 사이에 공통의 척도가 없다면 이론 선택은 설득과 개종의 문제가 된다.

재반론. 쿤 자신은 정확성, 일관성, 넓은 적용 범위, 단순성, 다산성을 공유된 평가 가치로 열거한다. 이 가치들이 매번 같은 결론을 주지 않는다는 것과 아무 척도도 없다는 것은 다르다. 강한 독법은 쿤을 상대주의자로 만들지만, 약한 독법으로도 반증주의에 대한 그의 기술적 비판은 그대로 남는다. 논증의 힘을 유지하려면 약한 독법을 택하는 편이 낫다.

반론 3. 반증주의는 실제 물리학이 하는 일을 기술하지 못한다. 기술적으로 틀린 모형은 버려야 한다.

재반론. 기술과 규범을 구별해야 한다. 포퍼의 기준은 "과학자들이 이렇게 한다"는 보고가 아니라 "자기 이론을 진지하게 다루려면 이렇게 물어야 한다"는 요구다. 특히 자기 가설을 평가할 때 이 요구는 남을 평가할 때보다 훨씬 유용하다. 이 사이트의 트랙 C 가 모든 주장에 검증 경로나 그 부재를 명시하도록 하는 것은 이 규범적 독법을 따른 것이다.

물리학과의 접점

이 절은 접점을 표시할 뿐이며, 물리학의 결과를 형이상학적 결론의 전제로 쓰지 않는다.

  • 트랙 A 의 결합상수 러닝은 세 게이지 결합이 높은 에너지에서 한 점으로 모이는지를 계산하는 문제다. 이 계산은 라카토슈적 의미의 "새로운 사실 예측"이 어떤 모양인지 보여 주는 사례로만 여기서 쓰인다.
  • 트랙 A 의 양성자 붕괴 탐색은 포퍼적 금지의 사례다. 특정 대통일 모형은 수명의 상한을 금지하고, 실험은 그 금지를 시험한다 [1].
  • 통일이 좋은 것인가라는 물음은 물리학의 성과로 답해지지 않는다. 통일이 설명의 미덕인지 아니면 계산의 편의인지는 과학철학의 물음이며, 트랙 C 에서 별도의 논증을 거쳐야 한다.

연습문제

문제 1논증 재구성형

"초끈이론은 검증할 수 없으므로 과학이 아니다"라는 주장을 포퍼의 기준에 따라 전제-결론 형식으로 재구성하고, 그 재구성에서 가장 약한 전제를 하나 지목하시오.

해설

재구성 예시.

  1. 과학적 이론은 가능한 관찰 결과의 어떤 집합을 금지해야 한다.
  2. 초끈이론은 현재 기술로 접근 가능한 어떤 관찰 결과도 금지하지 않는다.
  3. 따라서 초끈이론은 과학적 이론이 아니다.

가장 약한 전제는 2 다. 여기에는 "현재 기술로 접근 가능한"이라는 한정이 몰래 들어가 있는데, 포퍼의 기준은 원리적 반증 가능성을 말하지 현재의 기술적 도달 범위를 말하지 않는다. 전제 2 를 원래 기준에 맞게 "어떤 상상 가능한 관찰 결과도 금지하지 않는다"로 고치면, 그 전제가 참인지는 훨씬 논쟁적이 된다.

흔한 오류는 전제 1 을 공격 대상으로 삼아 "포퍼의 기준 자체가 낡았다"로 넘어가는 것이다. 그럴듯한 이유는 쿤과 라카토슈의 비판이 널리 알려져 있어서다. 그러나 그 비판들은 기준의 적용 단위와 시간 규모를 문제 삼았지, 금지의 요구 자체를 폐기하지 않았다. 기준을 통째로 버리면 이 주장이 왜 틀렸는지도 말할 수 없게 된다.

문제 2오류 진단형

다음 문장에서 세 모형이 뒤섞여 생긴 오류를 지적하고, 한 모형만 골라 다시 쓰시오.

대통일이론은 아직 정상 과학의 패러다임으로 자리 잡지 못했으므로 반증 가능하지 않고, 따라서 퇴행적 연구 프로그램이다.

해설

세 모형의 술어가 인과 사슬처럼 연결되어 있지만, 셋 사이에는 그런 함축 관계가 없다.

첫째, 패러다임의 지위와 반증 가능성은 서로 독립이다. 공동체가 널리 받아들이지 않은 이론도 관찰 결과를 금지할 수 있고, 널리 받아들여진 이론이 금지를 잃을 수도 있다.

둘째, 반증 가능성과 전진·퇴행도 독립이다. 라카토슈의 판정은 프로그램이 새로운 예측을 산출했는지에 달려 있지, 낱개 이론이 반증 가능한지에 달려 있지 않다.

한 모형으로 다시 쓴 예. "대통일 프로그램은 양성자 붕괴 수명이라는 새로운 예측을 내놓았고 그 예측이 실험으로 좁혀져 왔다. 예측이 어긋날 때마다 모형을 미세 조정하는 방식이 계속되고 새로운 예측이 나오지 않는다면, 그때 프로그램은 퇴행적이라고 판정된다."

흔한 오류는 세 모형의 용어를 같은 축 위의 등급으로 보는 것이다. 그럴듯한 이유는 세 이름이 대개 한 강의에서 연속으로 소개되어 시간 순서가 곧 우열이라는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셋은 서로 다른 질문에 대한 답이지 같은 질문에 대한 개선안이 아니다.

문제 3반론 작성형

"세 모형은 서로 다른 질문에 답하므로 충돌하지 않는다"는 이 단원의 정리에 대해 가장 센 반론을 만드시오.

해설

가장 센 반론은 이 정리가 세 모형을 화해시키는 대신 판정 책임을 회피한다는 것이다.

논증은 이렇다. 실제 상황에서 우리가 알고 싶은 것은 "이 연구에 공적 자금을 계속 쓸 것인가", "이 가설을 학생에게 가르칠 것인가" 같은 단일한 결정이다. 세 모형이 서로 다른 답을 주고 그 차이가 질문의 차이 때문이라고만 말하면, 결정을 내려야 하는 사람은 아무 지침도 얻지 못한다. 모형을 고르는 메타 기준이 없다면 "질문이 달라서 답이 다르다"는 말은 사실상 어느 답이든 골라 쓸 수 있다는 뜻이 된다.

이 반론에 대한 답은 부분적 인정이다. 메타 기준은 이 단원의 범위 밖이며, 실제로 필요하다. 다만 이 단원이 요구하는 것은 결정 이전에 어느 모형으로 판정했는지를 명시하라는 절차적 규칙이다. 명시된 판정은 반박될 수 있고, 명시되지 않은 판정은 반박될 수 없다. 반박 가능성을 확보하는 것이 첫 단계다.

더 읽기

  • [2] 1장은 반증 기준의 가장 읽기 쉬운 진술이다. 정신분석과 마르크스주의를 예로 든 대목이 특히 유명하지만, 물리학에 적용할 때는 예의 강도를 그대로 옮기지 않는 편이 낫다.
  • [3] 는 2장에서 정상 과학을, 5장 이후에서 위기와 혁명을 다룬다. 본문을 읽기 전 후기에 실린 해명을 먼저 보면 상대주의 독법을 피하기 쉽다.
  • [4] 3절이 견고한 핵과 보호대의 구분, 전진적·퇴행적 문제 이동의 정의를 담고 있다.

참고문헌

  1. Takenaka, A. et al. (2020). Search for proton decay via $p \to e^+ \pi^0$ and $p \to \mu^+ \pi^0$ with an enlarged fiducial volume in Super-Kamiokande I-IV. Physical Review D 102, 112011. doi:10.1103/PhysRevD.102.112011 · arXiv:2010.16098
  2. Popper, K. (1963). Conjectures and Refutations: The Growth of Scientific Knowledge. Routledge.
  3. Kuhn, T. S. (1962). The Structure of Scientific Revolutions. University of Chicago Press.
  4. Lakatos, I. (1970). Falsification and the Methodology of Scientific Research Programmes. Criticism and the Growth of Knowle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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