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0-1관계 유형론 · 어느 자리에서 말하는가
과학과 종교의 관계를 갈등·독립·대화·통합 네 유형으로 구분하고, 자기 입장을 한 유형으로 명시하는 훈련을 한다.
지정 원전
- Ian G. Barbour, 『Religion and Science』 1부 3장 "Ways of Relating Science and Religion" · HarperOne 1997 · 영어
- Alvin Plantinga, 『Where the Conflict Really Lies』 서문 및 9장 · Oxford University Press 2011 · 영어
번역본으로 읽어도 좋지만 해설서만 읽고 원전을 건너뛰지 않는다.
문제 상황
"과학과 종교는 충돌하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답은 대개 논쟁의 결론이 아니라 전제다. 답하는 사람이 이미 어떤 관계 모형을 깔고 있고, 그 모형이 드러나지 않은 채 논쟁이 진행된다.
이 사이트에서 이 문제는 추상적이지 않다. 트랙 A 는 물리학을, 트랙 B 는 형이상학과 신학을 다루고, 트랙 C 는 둘을 나란히 놓는다. 나란히 놓는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 먼저 정하지 않으면, 트랙 C 는 물리학의 권위를 빌려 형이상학적 결론을 밀어붙이는 글이 되거나 형이상학의 어휘로 물리학을 재단하는 글이 된다. 둘 다 범주 오류다.
그래서 트랙 B 의 첫 단원은 내용이 아니라 자리를 정하는 일이다.
원전 발췌
나는 과학과 종교의 관계를 보는 네 가지 방식을 서술하려 한다. 갈등, 독립, 대화, 통합이다.
I will describe four ways of viewing the relationship between science and religion: Conflict, Independence, Dialogue, and Integration.
바버의 분류는 규범이 아니라 지도다. 어느 유형이 옳다고 말하지 않고, 실제 논의가 어느 자리에서 벌어지는지 표시할 뿐이다 [1].
과학과 유신론적 종교 사이에는 표면적 갈등이 있으나 깊은 조화가 있고, 과학과 자연주의 사이에는 표면적 조화가 있으나 깊은 갈등이 있다.
There is superficial conflict but deep concord between science and theistic religion, and superficial concord but deep conflict between science and naturalism.
플랜팅가의 이 문장은 바버의 네 유형 어디에도 그대로 들어가지 않는다 [2]. 갈등의 당사자를 종교와 과학이 아니라 종교와 자연주의로 다시 놓기 때문이다. 이 재배치가 정당한지가 이 단원의 쟁점이다.
논증 재구성
플랜팅가의 논지를 전제-결론으로 펴면 다음과 같다.
- 과학의 방법은 자연적 원인만 다룬다. (방법론적 자연주의)
- 자연적 원인만 다룬다는 것은 자연적 원인만 존재한다는 주장과 다르다.
- 자연적 원인만 존재한다는 주장은 형이상학적 자연주의이며, 과학의 결과가 아니라 과학에 덧붙인 전제다.
- 따라서 과학과 종교가 충돌한다고 말할 때 실제로 충돌하는 것은 종교와 형이상학적 자연주의다.
- 그러므로 "과학 대 종교"라는 구도는 자리를 잘못 잡은 것이다.
전제 1 과 2 는 논란의 여지가 적다. 무게는 전제 3 에 실린다. 형이상학적 자연주의가 정말로 과학 바깥에서 들여온 전제인지, 아니면 과학의 성공에서 귀납적으로 지지되는 입장인지가 갈리는 지점이다.
반론과 재반론
반론 1. 형이상학적 자연주의는 덧붙인 전제가 아니라 최선의 설명으로의 추론이다. 자연적 설명이 계속 성공해 왔다면 초자연적 원인을 상정할 이유가 줄어든다.
재반론. 성공의 누적은 아직 설명되지 않은 영역에 대해서는 약한 귀납적 근거만 준다. 더 중요한 것은 이 귀납 자체가 경험적 명제가 아니라 방법론적 원칙의 형이상학적 확장이라는 점이다. 확장의 정당화는 과학 안에서 나오지 않는다.
반론 2. 전제 2 의 구분을 인정하더라도, 실천적으로는 차이가 없다. 방법론적 자연주의를 일관되게 지키면 초자연적 설명은 결코 채택되지 않으므로 결과는 형이상학적 자연주의와 같다.
재반론. 결과가 같다는 것과 주장이 같다는 것은 다르다. 두 입장은 "설명되지 않은 것이 원리적으로 설명될 수 있는가"라는 물음에 서로 다르게 답한다. 이 차이는 반증 가능성을 논할 때 실질적 차이를 만든다. 방법론적 자연주의는 이 물음에 답하지 않고, 형이상학적 자연주의는 예라고 답한다.
반론 3. 플랜팅가의 재배치는 유신론에 유리한 방향으로만 작동한다. 같은 논법으로 어떤 형이상학적 전제든 과학 바깥으로 밀어낼 수 있다.
재반론. 그렇다. 이것은 반론이라기보다 논증의 범위에 대한 정확한 지적이다. 논증이 보여 주는 것은 유신론이 옳다는 것이 아니라, "과학이 종교를 반박했다"는 문장이 부정확하다는 것뿐이다. 논증의 결론은 방어적이며, 이 점을 인정하는 것이 이 단원의 목표다.
물리학과의 접점
이 절은 표시만 하고 주장하지 않는다. 트랙 A 의 내용을 여기서 논거로 쓰지 않는다는 뜻이다.
- 트랙 A 에서 다룰 결합상수 러닝과 통일 척도 추정은 관측으로 부정될 수 있는 물리적 주장이다. "궁극의 원리가 존재한다"는 형이상학적 주장과 같은 범주에 있지 않다.
- 트랙 A 의 양성자 붕괴 탐색은 반증 가능성의 교과서적 사례다. 트랙 C 에서 형이상학적 명제에 검증 경로를 붙이는 훈련을 할 때 이 사례를 비교 기준으로 쓴다.
- 접점을 주장으로 바꾸려면 트랙 C 의 근거 단원 표기 규칙을 통과해야 한다.
연습문제
문제 1논증 재구성형
바버의 네 유형 중 하나를 골라, 그 유형에서 "우주에 시작이 있다"는 빅뱅 우주론의 결과가 창조 교리와 어떤 관계에 놓이는지 전제-결론 형식으로 세 줄 이내로 쓰시오.
해설
독립 유형을 고른 예시다.
- 빅뱅 우주론은 과거 방향으로 유한한 시간 경계가 있다는 물리적 주장이다.
- 창조 교리는 세계가 존재하는 근거에 대한 형이상학적 주장이며 시간적 시작을 필수 요소로 포함하지 않는다.
- 따라서 1 은 2 의 증거도 반증도 아니다.
통합 유형을 골랐다면 2 를 "창조 교리는 시간적 시작을 함축한다"로 놓고 1 을 증거로 삼는 논증이 된다. 어느 쪽이 옳은지는 이 문제의 범위 밖이고, 자기가 어느 전제를 택했는지 밝히는 것이 요구 사항이다.
흔한 오류는 유형을 밝히지 않고 1에서 곧바로 "따라서 창조가 확인되었다"로 가는 것이다. 그럴듯한 이유는 두 문장이 모두 "시작"이라는 같은 낱말을 쓰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쪽의 시작은 시간 좌표의 경계이고 다른 쪽의 시작은 존재의 근거다.
문제 2오류 진단형
다음 단락에서 범주 오류를 찾아 지적하고, 두 문장으로 나누어 고쳐 쓰시오.
양자역학은 관측자가 있어야 상태가 결정된다고 말한다. 따라서 의식이 실재를 만들어 내며, 우주가 존재하려면 궁극의 관측자가 필요하다.
해설
두 군데가 문제다.
첫째, "관측자가 있어야 상태가 결정된다"는 서술은 측정 문제에 대한 특정 해석(의식 붕괴 해석)을 마치 양자역학의 내용인 것처럼 제시한다. 물리학의 측정은 거시적 자유도와의 얽힘이며 의식을 요구하지 않는다.
둘째, "의식이 실재를 만든다"에서 "궁극의 관측자가 필요하다"로 가는 단계는 물리학의 측정 개념을 형이상학적 근거지음 개념으로 바꿔치기한다. 측정은 상태에 대한 정보 획득이고 근거지음은 존재의 의존 관계다. 서로 다른 범주다.
고쳐 쓰면,
- (물리) 양자역학의 측정 문제는 상태 벡터의 축약을 언제 어떻게 다룰지에 대한 미해결 문제이며, 표준적 서술은 의식을 요구하지 않는다.
- (형이상학) 세계가 존재하는 근거로 관측자를 요구하는 주장은 별도의 형이상학적 논증을 필요로 하며, 양자역학의 결과로부터 따라 나오지 않는다.
흔한 오류는 "관측"이라는 같은 낱말이 두 문장에 나오므로 같은 것을 가리킨다고 보는 것이다. 그럴듯한 이유는 물리학이 일상어를 전문 용어로 전용해 쓰기 때문이다. 전문 용어로 쓰인 낱말은 일상적 함의를 잃는다.
문제 3반론 작성형
이 사이트가 택한 입장, 곧 "트랙을 분리하고 통합은 전용 트랙에서만 한다"에 대한 가장 센 반론을 하나 만드시오.
해설
가장 센 반론은 분리 자체가 이미 독립 유형이라는 한 입장을 택한 것이며, 중립이 아니라는 지적이다.
논증은 이렇다. 분리를 설계 원칙으로 삼으면 두 영역이 실제로 겹치는 경우를 구조적으로 보지 못하게 된다. 예를 들어 법칙의 존재론적 지위를 묻는 물음은 물리학의 실천과 형이상학이 실제로 맞물리는 자리인데, 트랙을 나누면 어느 쪽에서도 온전히 다루지 못하고 트랙 C 로 미뤄진다. 미뤄진 물음은 양쪽의 세부를 잃은 채 요약으로만 다뤄진다.
이 반론에 대한 이 사이트의 답은 부분적 인정이다. 분리는 중립이 아니라 선택이며, 그 선택의 대가는 겹침을 늦게 본다는 것이다. 대신 얻는 것은 초기 단계에서 범주 오류가 누적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트랙 B 모듈 4 가 법칙의 지위를 다루고 그것이 트랙 C2 의 직접 선수 단원인 것은 이 대가를 줄이려는 장치다.
더 읽기
- [1] 1부 3장이 네 유형의 원전이다. 더 짧은 서술은 [3]에 있다.
- [2] 은 갈등의 당사자를 다시 놓는 시도다. 9장이 방법론적 자연주의와 형이상학적 자연주의의 구분을 다룬다.
참고문헌
- Barbour, I. G. (1997). Religion and Science: Historical and Contemporary Issues. HarperOne.
- Plantinga, A. (2011). Where the Conflict Really Lies: Science, Religion, and Naturalism. Oxford University Press.
- Barbour, I. G. (2000). When Science Meets Religion: Enemies, Strangers, or Partners?. HarperOne.
초고 AI 보조이 글은 초고 작성에 AI 보조를 썼습니다. 수식 유도와 인용은 사람이 확인해야 검토 완료로 올라갑니다.사용 범위
개념 연결
- 과학과 종교의 관계 유형론Typology of science–religion relations갈등·독립·대화·통합 네 유형으로 과학과 종교의 관계를 분류한 이언 바버의 틀. 어떤 입장에서 말하는지 밝히지 않으면 논쟁이 서로 다른 유형을 오간다.
- 범주 오류Category mistake어떤 범주에 속한 것에만 쓸 수 있는 술어를 다른 범주의 것에 붙이는 잘못. 문장이 문법적으로는 멀쩡해 보이지만 참도 거짓도 될 수 없다.
- 반증 가능성Falsifiability어떤 관측이 있으면 이론이 틀렸다고 판정할 수 있는 성질. 포퍼는 이것을 과학과 비과학을 가르는 기준으로 제안했고, 이후 쿤과 라카토슈가 그 단순한 형태를 비판했다.
이 단원을 근거나 참조로 쓰는 글
- 개념 글물리학이 정하지 않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