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랙 B 종교·철학 · B1 형이상학 기초

B1-4양상과 필연

필연·우연·본질을 가능세계 언어로 정식화하고, 크립키의 필연적 후험 개념이 물리 상수 논의에 어떤 제약을 거는지 본다.

Jun Lee종교·철학중급검토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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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정 원전

  • Saul Kripke, 『Naming and Necessity』 3강 · Harvard University Press 1980 · 영어
  • 아리스토텔레스, 『형이상학』 Z편 4장 1029b13-1030a17 · Metaphysica, Oxford Classical Texts · 그리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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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 상황

통일장이론을 둘러싼 논의는 거의 언제나 양상 주장을 포함한다. "결합상수가 지금 값이어야 할 이유가 있는가", "물리 법칙이 달랐을 수도 있는가", "궁극 이론은 상수를 자유 매개변수 없이 도출해야 한다" 같은 문장이 그렇다. 이 문장들은 사실 주장이 아니라 무엇이 달라질 수 있었는가에 대한 주장이다.

문제는 "할 수 있었다"가 최소한 네 가지로 쓰인다는 점이다. 논리적 가능성(모순을 포함하지 않음), 개념적 가능성(뜻에 어긋나지 않음), 형이상학적 가능성(세계가 그러할 수 있었음), 물리적 가능성(현행 법칙과 양립함). 네 범위는 포함 관계에 있지 않다. 특히 형이상학적 가능성과 인식적 가능성 — 우리가 아는 한 그럴 수 있음 — 을 섞는 것이 가장 흔한 사고다.

이 단원은 세 낱말을 가능세계 언어로 확정한다. 필연은 모든 가능세계에서 참임, 우연은 어떤 세계에서는 참이고 어떤 세계에서는 거짓임, 본질은 그것이 존재하는 모든 세계에서 그것이 지니는 성질이다. 가능세계는 여기서 실재하는 장소가 아니라, 양상 주장을 명료하게 적기 위한 표기법으로만 쓴다.

원전 발췌

일반적으로 과학은 기본적인 구조적 특징을 조사함으로써 그 종류의 본성을, 따라서 (철학적 의미의) 본질을 찾으려 한다.

영어

In general, science attempts, by investigating basic structural traits, to find the nature, and thus the essence (in the philosophical sense) of the kind.

Saul Kripke, 『Naming and Necessity』 3강· Harvard University Press 1980

이 문장이 뒤집는 전제는 "필연적인 것은 선험적으로 알려진다"이다 [1]. 물이 H2O 라는 것은 실험으로 알려졌으나, 알려진 뒤에는 모든 가능세계에서 참이다. 인식의 경로와 양상적 지위가 분리된다.

내가 옹호하는 착상에 따르면 이론적 동일성은 일반적으로 두 고정 지시어 사이의 동일성이며, 따라서 필연적 후험의 사례다.

영어

Theoretical identities, according to the conception I advocate, are generally identities involving two rigid designators and therefore are examples of the necessary a posteriori.

Saul Kripke, 『Naming and Necessity』 3강· Harvard University Press 1980

각각의 것의 본질이란 그것이 그 자체로서 말해지는 바다.

그리스어

τὸ τί ἦν εἶναι ἑκάστου ὅ λέγεται καθ᾽ αὑτό.

아리스토텔레스, 『형이상학』 Z편 4장 1029b13-16· Metaphysica, Oxford Classical Texts

아리스토텔레스의 본질은 정의에 대응하는 것이고, 크립키의 본질은 가능세계 전역에서 유지되는 성질이다 [2]. 둘은 같지 않지만, 우연히 지니는 성질과 그것 없이는 그것이 아닌 성질을 가른다는 점에서 이어진다.

논증 재구성

크립키의 필연적 후험 논증을 전제-결론으로 펴면 이렇다.

  1. 고정 지시어는 그것이 지시하는 대상이 존재하는 모든 가능세계에서 같은 대상을 지시하는 표현이다. 고유명과 자연종 이름이 여기에 속한다.
  2. aabb 가 고정 지시어이고 a=ba = b 가 참이면, aabb 는 모든 가능세계에서 같은 대상을 지시한다.
  3. 같은 대상이 자기 자신과 다를 수 있는 세계는 없다.
  4. 따라서 a=ba = b 는 참이라면 필연적으로 참이다.
  5. 그런데 우리가 a=ba = b 를 아는 방식은 경험적일 수 있다.
  6. 그러므로 필연적이면서 후험적으로 알려지는 참이 있다.
  7. 이런 경우 "aabb 가 아닐 수도 있었다"는 인상은, 실은 "aa 를 골라내는 우연적 성질을 가진 다른 것이 bb 가 아닐 수도 있었다"는 인식적 상황을 잘못 기술한 것이다.

무게는 1 과 7 에 실린다. 1 은 지시에 대한 이론이고, 7 은 우리가 가능하다고 상상하는 것과 형이상학적으로 가능한 것을 가르는 장치다. 7 이 없으면 6 은 직관에 반하는 결론으로 남는다.

반론과 재반론

반론 1. 기술주의의 반격. 고정 지시어라는 개념 자체가 양상 직관에 기대어 정의된다. "모든 가능세계에서 같은 것을 지시한다"를 판정하려면 세계를 넘나드는 동일성 판정이 이미 있어야 하는데, 그 판정 기준이 곧 기술이다. 그러면 논증은 순환이다.

재반론. 크립키의 답은 가능세계가 망원경으로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규정되는 것이라는 데 있다. 우리가 "닉슨이 선거에서 졌더라면"이라고 말할 때, 닉슨을 먼저 지정하고 그에 대해 반사실을 세우는 것이지 어떤 기술에 맞는 자를 찾는 것이 아니다. 이 답은 세계 간 동일성 문제를 해소하기보다 우회하며, 우회가 정당한지는 여전히 논쟁거리다.

반론 2. 상대역 이론. 세계를 넘나드는 동일성은 없다. 각 세계에는 서로 닮은 상대역이 있을 뿐이고, 무엇이 상대역인지는 맥락이 정하는 유사성 기준에 달려 있다. 그렇다면 본질은 대상의 성질이 아니라 기술 방식에 상대적이다.

재반론. 상대역 이론은 양상 논리를 잘 다루지만, 본질 주장이 말하려는 것을 담기 어렵다. "이 책상이 나무 아닌 것일 수 있었다"는 물음이 유사성 기준의 선택 문제로 바뀌면, 물리 상수가 달랐을 수 있는지에 대한 물음도 같은 방식으로 상대화된다. 그 상대화를 받아들일지가 선택지다 [3].

반론 3. 자연법칙은 필연인가. 크립키식 논증을 법칙에 적용하면, 자연종의 본질이 필연이므로 그 종이 따르는 법칙도 필연이라는 결론이 유혹적으로 따라온다. 그러나 법칙을 우연적 규칙성으로 보는 견해에서는 같은 법칙이 다른 세계에서 성립하지 않는다.

재반론. 이 반론은 반론이라기보다 미해결 분기점이다. 성향주의는 성질이 그 인과적 역할을 본질로 가진다고 보아 법칙의 필연성을 얻고, 흄주의는 성질을 범주적인 것으로 보아 법칙을 우연으로 남긴다. 어느 쪽을 택하느냐가 "상수가 달랐을 수 있는가"에 대한 답을 좌우한다 [4]. 이 단원은 두 선택지를 모두 살려 둔다.

물리학과의 접점

표시만 하고 주장하지 않는다.

  • 자유 매개변수의 수는 이론의 형식적 성질이다. 표준모형이 열아홉 개 남짓의 매개변수를 갖는다는 것은 세는 방식이 정해지면 확인되는 사실이다. 이 수가 줄어드는 것을 통일의 지표로 삼는 것은 방법론적 선택이지, 줄어든 매개변수가 필연이 되었다는 뜻이 아니다.
  • 통일 이론이 상수를 도출한다는 말은 더 적은 입력에서 더 많은 출력을 얻는다는 뜻이다. 도출된 값도 이론 자체가 우연적으로 성립한다면 여전히 우연적이다. 도출은 양상적 지위를 바꾸지 않고 의존 구조만 바꾼다.
  • 다중우주 시나리오는 상수의 값을 선택 효과로 설명하려 한다. 여기서 쓰이는 "다른 우주"는 물리적으로 실현된 영역이고, 양상 논의의 "가능세계"는 표기법이다. 둘을 같은 것으로 놓으면 범주 오류다.

이 세 항목 가운데 어느 것도 필연과 우연의 구분을 물리학 안에서 결정하지 않는다. 결정하려면 법칙의 존재론적 지위에 대한 입장을 먼저 택해야 한다.

연습문제

문제 1개념 진술형

"미세구조상수가 다른 값을 가질 수 있었다"를 네 가지 양상 각각으로 읽고 참·거짓 또는 미결을 판정하시오.

해설
  • (논리적) 참. 다른 값을 넣은 서술에 형식적 모순은 없다.
  • (개념적) 참. "미세구조상수"는 특정 수치를 뜻으로 담지 않고 역할로 규정된다.
  • (물리적) 현행 법칙을 고정하면 거짓이다. 상수는 법칙의 일부이므로 그 안에서 다른 값을 가질 여지가 없다. 다만 상수를 동역학적 장의 기댓값으로 보는 이론에서는 참이 될 수 있다.
  • (형이상학적) 미결. 답은 법칙이 필연인지 우연인지에 달려 있으며, 물리학이 아니라 b1-4 의 반론 3 에서 갈린 두 입장이 결정한다.

흔한 오류는 물리적 가능성에서 곧바로 형이상학적 필연을 읽는 것이다. 그럴듯한 이유는 "법칙"이라는 낱말이 이미 예외 없음을 함축하는 것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외 없음은 이 세계 안의 전칭성이고, 필연은 세계들 전체에 대한 주장이다.

문제 2논증 재구성형

크립키의 논증을 본떠 "물은 H2O 이다"와 같은 구조를 물리학 사례에 적용하고, 적용이 성립하지 않는 지점을 지적하시오.

해설

적용 시도. "온도는 평균 운동에너지다"는 두 고정 지시어 사이의 이론적 동일성이므로, 참이라면 필연적으로 참이다. 후험적으로 알려졌으나 필연이다.

성립하지 않는 지점이 두 군데 있다. 첫째, "온도"는 기체에 대해서는 평균 운동에너지와 동일시되지만 다른 계에서는 다르게 실현된다. 다중 실현되는 술어는 고정 지시어의 조건을 만족하지 않는다. 둘째, 이론적 동일성으로 보이는 많은 물리학 문장은 실은 근사적 동일성이거나 특정 영역에 한정된 대응이다. 근사는 세계 전역의 동일성이 될 수 없다.

흔한 오류는 교과서의 "이다"를 모두 동일성으로 읽는 것이다. 그럴듯한 이유는 수식에서 등호가 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등호는 정의, 근사, 특정 조건 아래의 수치 일치를 모두 같은 기호로 적는다.

문제 3반론 작성형

"궁극 이론은 왜 그것이어야 하는지를 스스로 설명해야 한다"는 요구에 대한 반론을 만들고, 그 반론이 어떤 양상 개념에 기대는지 밝히시오.

해설

반론. 어떤 이론이든 그것이 참임을 설명하려면 더 근본적인 무엇에 호소해야 하는데, 궁극 이론에는 그런 것이 없다. 따라서 요구는 원리상 충족 불가능하며, 충족 불가능한 요구를 기준으로 삼는 것은 이론 평가의 기준이 될 수 없다.

이 반론은 설명이 늘 더 근본적인 것으로의 환원이라는 전제에 기댄다. 그리고 그 전제는 근거지음의 사슬이 비순환적이라는 양상적 가정을 쓴다. 자기근거지음을 허용하는 입장 — 이론이 자기 필연성을 내부에서 보이는 경우 — 에서는 반론이 약해진다.

흔한 오류는 이 반론을 "궁극 이론은 불가능하다"로 확대하는 것이다. 그럴듯한 이유는 설명 불가능한 것이 정당화되지 않은 것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설명의 사슬이 끝난다는 것과 사슬의 끝이 임의적이라는 것은 다른 주장이다.

더 읽기

  • [1] 3강이 필연적 후험과 자연종 본질을 다루는 핵심이다. 1강의 고정 지시어 정의를 먼저 읽어야 3강이 읽힌다.
  • [2] Z편 4-6장은 본질과 정의의 관계를 다룬다. 크립키와 대조하면 "본질"이 두 전통에서 다른 일을 한다는 점이 드러난다.
  • [4] 은 법칙을 보편자 사이의 필연화 관계로 보는 입장을, [3] 은 그 대안을 제시한다. 두 글의 대립이 b1-5 와 트랙 B 모듈 4 로 이어진다.

참고문헌

  1. Kripke, S. A. (1980). Naming and Necessity. Harvard University Press.
  2. Aristotle (1924). Metaphysics. Oxford University Press.
  3. Lewis, D. (1983). New Work for a Theory of Universals. Australasian Journal of Philosophy 61, 343–377. doi:10.1080/00048408312341131
  4. Armstrong, D. M. (1983). What Is a Law of Nature?. Cambridge University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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