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1-5근거지음과 근본성
"A가 B를 근거짓는다"를 인과·수반·환원과 구분하고, 근본적인 것이 무엇이냐는 물음을 존재 목록 물음과 분리한다.
지정 원전
- Jonathan Schaffer, 『On What Grounds What』 1절, 2절 · Metametaphysics, Oxford University Press 2009 · 영어
- 바뤼흐 스피노자, 『에티카』 1부 정리 14, 정리 15 · Ethica, Opera Posthuma 1677 · 라틴어
번역본으로 읽어도 좋지만 해설서만 읽고 원전을 건너뛰지 않는다.
문제 상황
앞의 네 단원이 어휘를 하나씩 놓았다. 실체와 속성, 인과, 시간, 양상이다. 남은 하나가 이 모듈의 목표다. "A 때문에 B 이다"라고 말할 때, 그 "때문에"가 인과가 아닌 경우가 있다. 공이 둥글기 때문에 그것이 모양을 가진다. 두 사건이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한 사실이 다른 사실을 성립시킨다. 이 관계를 근거지음이라 부른다.
근거지음을 별도 어휘로 두는 이유는 인접 개념들이 이 일을 대신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수반은 공변만 말하고 방향을 주지 않는다. 미시 상태가 거시 상태에 수반한다는 말과 그 반대가 형식적으로 대칭인 경우가 있다. 환원은 언어 사이의 번역 가능성을 요구하는데, 번역이 되지 않아도 의존은 성립할 수 있다. 인과는 사건 사이의 관계이고 시간적 선행을 대개 포함하는데, 여기서 필요한 것은 동시적이고 비시간적인 의존이다.
통일장이론 맥락에서 이 어휘가 필요한 자리는 분명하다. "모든 것이 장으로 환원된다", "구조가 더 근본적이다", "전체가 부분보다 먼저다" 같은 주장은 모두 근거지음 주장이며, 인과 주장으로 읽으면 곧바로 무의미해진다.
원전 발췌
아리스토텔레스적 관점에서 형이상학은 무엇이 무엇을 근거짓는가에 대한 것이다. 그것은 세계의 구조에 대한 것이다. 무엇이 근본적이며 무엇이 거기서 파생하는가에 대한 것이다.
On the Aristotelian view, metaphysics is about what grounds what. It is about the structure of the world. It is about what is fundamental, and what derives from it.
셰퍼의 제안은 형이상학의 물음을 바꾸자는 것이다 [1]. 콰인 이후 형이상학은 "무엇이 존재하는가"를 물어 왔고, 그 물음은 대개 예/아니오로 답된다. 셰퍼는 존재 목록 물음 대신 구조 물음을 두자고 한다. 수가 존재하는지가 아니라, 수가 무엇에 근거하는지를 묻자는 것이다.
근거지음은 신아리스토텔레스주의자가 그리하듯 원초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근거지음은 분석 불가능하지만 필요한 개념이며, 형이상학의 원초적 구조 개념이다.
Grounding should be taken as primitive, as per the neo-Aristotelian. Grounding is an unanalyzable but needed notion—it is the primitive structuring conception of metaphysics.
있는 것은 무엇이든 신 안에 있으며, 신 없이는 아무것도 있을 수 없고 파악될 수도 없다.
Quicquid est, in Deo est, et nihil sine Deo esse, neque concipi potest.
스피노자의 정리는 근거지음 언어의 극단적 사례다 [2]. 여기서 "안에 있다"는 공간적 포함이 아니라 존재론적 의존이며, 근거의 사슬이 하나의 항에서 끝난다는 주장이다.
논증 재구성
셰퍼의 우선성 일원론 논증을 전제-결론으로 펴면 이렇다.
- 근거지음은 비대칭적이고 이행적이며 비반사적인 순서 관계다.
- 근거의 사슬은 어딘가에서 끝난다. 끝나지 않으면 아무것도 근거지어지지 않는다. (근거의 정초 원리)
- 사슬의 끝에 있는 것을 근본적인 것이라 부른다.
- 전체와 부분 가운데 어느 쪽이 근본적인지는 경험적·이론적 고려로 정해진다.
- 물리학에서 얽힘과 장은 부분들의 성질로 환원되지 않는 전체 수준의 상태를 보여 준다.
- 따라서 우주 전체가 근본적이고 부분들이 거기서 파생한다고 보는 편이 낫다. 이것이 우선성 일원론이다.
주의할 점이 있다. 여기서 주장되는 것은 부분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다. 존재 일원론은 하나만 있다고 말하지만, 우선성 일원론은 여럿이 있되 하나가 근본적이라고 말한다 [3]. 이 구분이 일원론 항목의 핵심이다.
무게는 2 와 5 에 실린다. 2 는 형이상학적 가정이고, 5 는 물리학에서 형이상학으로 건너가는 지점이다. 아래에서 5 를 따로 검토한다.
반론과 재반론
반론 1. 근거지음은 불필요하다. 근거지음이 하는 일은 수반, 실현, 환원, 부분전체론적 구성으로 나누어 처리할 수 있다. 원초적이고 분석 불가능한 관계를 추가하는 것은 설명의 이름으로 설명되지 않는 것을 늘리는 일이다.
재반론. 열거된 관계들은 각각 특정 사례에는 맞지만 공통 구조를 놓친다. "이 행위가 옳은 것은 고통을 줄이기 때문이다"와 "이 공이 색을 가지는 것은 붉기 때문이다"는 수반도 환원도 부분전체론도 아니면서 같은 종류의 의존을 보인다. 다만 반론은 유효한 압력을 준다. 근거지음이 하나의 관계인지 여러 관계의 묶음인지는 아직 정리되지 않았다.
반론 2. 정초 원리를 의심한다. 근거의 사슬이 무한히 내려갈 수 있다. 물리학의 역사는 매번 "더 아래"가 있었음을 보여 준다. 무한 하강 세계에서도 각 층은 아래층에 의해 근거지어지므로 설명이 끊기지 않는다.
재반론. 무한 하강이 논리적으로 가능하다는 데는 대체로 합의가 있다. 쟁점은 그런 세계에서 "근거지어짐"이 내용을 갖는지다. 각 층이 아래층에 빚지고 어느 층도 자기 자산이 없다면, 전체 사슬은 아무것도 갚지 못한 채 내려간다는 것이 정초 원리 쪽 직관이다. 반대쪽은 이 직관이 유한한 설명 습관의 투사일 뿐이라고 답한다. 결착되지 않았으며, 이 사이트는 정초 원리를 가정으로 표시해 두고 쓴다.
반론 3. 전제 5 의 월권. 얽힘이 전체 수준 상태를 보여 준다는 것은 물리학의 사실이지만, 거기서 전체가 존재론적으로 앞선다는 결론으로 가는 것은 b0-1 에서 금지한 종류의 이행이다.
재반론. 정당한 지적이며, 셰퍼 자신도 5 를 결정적 증거가 아니라 개연성 논거로 제시한다. 얽힘 상태가 부분 상태들의 곱으로 분해되지 않는다는 것은 상태 공간의 구조에 대한 사실이다. 이것을 근거지음 방향의 증거로 쓰려면 "상태를 결정하는 것이 존재론적으로 앞선다"는 다리 원리가 필요하고, 그 원리는 형이상학적이다. 이 단원은 5 를 논증의 일부로 두되 그 지위를 조건부로 표시한다.
물리학과의 접점
표시만 하고 주장하지 않는다.
- 유효장론의 층위 구조는 낮은 에너지 서술이 높은 에너지 서술에 어떻게 의존하는지를 정밀하게 다룬다. 이 의존은 근거지음의 좋은 모형처럼 보이지만, 유효 이론의 계수는 위에서 아래로 결정되되 아래의 관측으로 고정된다. 방향이 한쪽이 아니다.
- 창발 논의는 더 많은 것이 다르다는 주장으로 요약된다 [4]. 이 주장은 인식적 창발(아래에서 위를 예측하기 어려움)일 수도, 존재론적 창발(위가 아래에 근거하지 않음)일 수도 있다. 같은 문장이 두 뜻으로 읽히는 것이 이 자리의 주된 혼동이다.
- 얽힘은 앞서 말한 대로 상태 공간의 구조에 관한 사실이다. 존재론적 우선성의 증거로 쓰려면 다리 원리를 명시해야 한다.
- 근거지음과 인과를 섞어 쓰면 "빅뱅이 우주를 근거짓는다" 같은 문장이 만들어진다. 시간적 선행과 존재론적 의존을 한 낱말에 담은 문장이며, 범주 오류의 표준 사례다.
연습문제
문제 1개념 진술형
다음 네 문장 각각이 인과 주장인지 근거지음 주장인지 판정하고, 근거지음이라면 방향을 밝히시오.
- 전자가 전하를 가지기 때문에 전자기장과 상호작용한다.
- 온도가 올라가서 기체가 팽창했다.
- 이 계가 대칭을 가지기 때문에 보존량이 있다.
- 우주가 미세조정되어 있기 때문에 생명이 가능하다.
해설
- 근거지음. 전하를 가짐이 상호작용 가능성을 근거짓는다. 두 사건이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성질이 역량을 성립시킨다.
- 인과. 시간적으로 앞선 사건이 뒤의 사건을 낳는다.
- 근거지음. 대칭에서 보존량으로 가는 것은 수학적 도출이며, 사건 사이의 관계가 아니다. 방향은 대칭에서 보존량 쪽이다. 다만 어떤 이론에서는 보존량 관측이 대칭을 발견하게 하므로, 인식의 방향과 근거의 방향이 반대다.
- 혼합. "가능하다"를 물리적 조건의 성립으로 읽으면 근거지음이고, 특정 시점의 우주 조건이 생명 발생 사건을 낳았다고 읽으면 인과다. 두 읽기를 구분하지 않는 것이 미세조정 논의의 흔한 출발점이다.
흔한 오류는 "때문에"가 모두 인과라고 보는 것이다. 그럴듯한 이유는 일상 대화의 "때문에"가 대부분 사건 설명에 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학과 형이상학의 "때문에"는 시간을 포함하지 않는다.
문제 2논증 재구성형
"장이 입자보다 근본적이다"를 근거지음 주장으로 정식화하고, 그 주장을 반박하는 가장 센 논거를 하나 쓰시오.
해설
정식화. 입자에 대한 모든 사실은 장에 대한 사실에 의해 근거지어지며, 그 역은 성립하지 않는다. 구체적으로, 어떤 입자가 특정 운동량을 가진다는 사실은 장의 들뜸 상태에 대한 사실에 의해 성립하고, 장의 상태에 대한 사실은 입자 사실로부터 성립하지 않는다.
반박 논거. 입자 개념과 장 개념의 관계는 배경 시공간에 의존한다. 가속 관측자나 곡률이 있는 시공간에서는 입자 수 자체가 관측자에 따라 달라진다. 근거지음이 비대칭적 순서 관계라면, 관측자 의존적인 항을 한쪽 끝에 두는 정식화는 성립하기 어렵다. 이 논거는 "장이 근본적이다"를 반박한다기보다, 정식화에서 "입자에 대한 사실"이 무엇인지 다시 정하게 만든다.
흔한 오류는 계산 절차의 순서를 존재론적 순서로 읽는 것이다. 그럴듯한 이유는 우리가 장에서 출발해 입자 상태를 얻기 때문이다. 유도의 방향은 이론 구성의 순서이지 근거의 방향이 아니다.
문제 3반론 작성형
우선성 일원론이 참이라고 해도 그것이 종교적 일원론이나 범신론을 지지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보이시오.
해설
우선성 일원론이 말하는 것은 우주 전체가 근거의 사슬 끝에 있다는 것뿐이다. 이 주장에는 전체가 의식을 가진다거나, 가치를 지닌다거나, 경배의 대상이라는 요소가 전혀 없다. 근본성은 순서 관계에서의 위치이고, 신성은 성질이다. 위치에서 성질로 가려면 별도의 전제가 필요하다.
또 하나. 스피노자의 체계에서 전체가 신인 것은 근거지음 구조 때문만이 아니라 자기원인, 무한 속성, 필연적 존재라는 추가 규정 때문이다. 이 규정들을 빼고 근거 구조만 취하면 남는 것은 형이상학적 주장이지 신학적 주장이 아니다.
흔한 오류는 "가장 근본적인 것"과 "가장 위대한 것"을 같은 것으로 놓는 것이다. 그럴듯한 이유는 두 표현이 모두 최상급이고, 전통적 신 개념이 실제로 둘을 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겸함은 논증으로 보여야 할 것이지 낱말이 주는 것이 아니다. 이 논증은 트랙 B 모듈 2 에서 다룬다.
더 읽기
- [1] 는 존재 물음에서 구조 물음으로의 전환을 제안한다. 1절과 2절만 읽어도 이 단원의 목적에는 충분하다.
- [3] 은 우선성 일원론을 본격적으로 논증하며, 얽힘 논거가 여기에 나온다.
- [5] Z편과 [2] 1부를 나란히 읽으면 근거지음 언어가 두 체계에서 어떻게 다른 결론으로 가는지 보인다.
- [4] 은 짧고 자주 오인용된다. 원문이 실제로 무엇을 주장하는지 직접 확인하는 것이 좋다.
참고문헌
- Schaffer, J. (2009). On What Grounds What. Metametaphysics: New Essays on the Foundations of Ontology, Oxford University Press.
- Spinoza, B. (1996). Ethics. Penguin Classics.
- Schaffer, J. (2010). Monism: The Priority of the Whole. Philosophical Review.
- Anderson, P. W. (1972). More Is Different. Science 177, 393–396. doi:10.1126/science.177.4047.393
- Aristotle (1924). Metaphysics. Oxford University Press.
초고 AI 보조이 글은 초고 작성에 AI 보조를 썼습니다. 수식 유도와 인용은 사람이 확인해야 검토 완료로 올라갑니다.사용 범위
개념 연결
- 근거지음GroundingA 때문에 B가 성립한다는 비인과적 의존 관계. 인과와 달리 시간을 필요로 하지 않으며, 무엇이 더 근본적인지를 따질 때 쓰는 어휘다.
- 일원론Monism근본적인 것이 하나라는 형이상학적 입장. 무엇이 하나인가에 따라 실체 일원론, 속성 일원론, 우선성 일원론으로 갈린다.
- 인과Causation한 사건이 다른 사건을 일으킨다는 관계. 규칙성, 반사실 의존, 확률 상승, 과정 중 무엇으로 분석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이론이 된다.
- 범주 오류Category mistake어떤 범주에 속한 것에만 쓸 수 있는 술어를 다른 범주의 것에 붙이는 잘못. 문장이 문법적으로는 멀쩡해 보이지만 참도 거짓도 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