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랙 B 종교·철학 · B1 형이상학 기초

B1-1존재론 기본 어휘

실체·속성·관계·사건 네 어휘를 구분하고, 장이 그중 무엇이냐는 물음을 제대로 세우는 훈련을 한다.

Jun Lee종교·철학중급검토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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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정 원전

  • 아리스토텔레스, 『범주론』 1b25-2a19 · Categoriae, Oxford Classical Texts · 그리스어
  • 아리스토텔레스, 『형이상학』 Z편 1028a10-1028b7 · Metaphysica, Oxford Classical Texts · 그리스어

번역본으로 읽어도 좋지만 해설서만 읽고 원전을 건너뛰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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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 상황

"전자기장이 존재한다"는 문장은 물리학 교과서 어디에나 있다. 그런데 여기서 "존재한다"가 무엇을 뜻하는지는 교과서가 말하지 않는다. 장은 돌멩이처럼 스스로 서 있는 무엇인가, 아니면 시공간의 각 점이 가지는 성질인가, 아니면 애초에 하나의 것이 아니라 상호작용이라는 사건들의 집합인가.

세 대답은 서로 다른 세계를 그린다. 그런데 물리학의 계산은 세 대답 어느 쪽에서도 똑같이 진행된다. 라그랑지안 밀도를 적어 운동방정식을 얻는 절차는 장이 실체인지 속성인지 묻지 않고 돌아간다. 그래서 물리학을 아무리 잘해도 이 물음은 저절로 풀리지 않는다.

문제는 어휘가 없을 때 생긴다. 어휘가 없으면 "장은 실재한다"와 "장은 계산 도구다"라는 두 문장이 서로 반대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한쪽은 실체에 대해, 다른 쪽은 표상에 대해 말하고 있어 애초에 맞부딪히지 않는다. 이것이 범주 오류의 전형이다.

이 단원은 네 낱말을 확정한다. 실체는 다른 것에 담기지 않고 스스로 있는 것, 속성은 실체에 담겨 있는 것, 관계는 둘 이상의 항 사이에만 성립하는 것, 사건은 시간 안에서 일어나는 변화다. 이후 트랙 B 의 모든 단원과 트랙 C 의 모든 주장은 이 네 낱말로 자기 주어를 밝혀야 한다.

원전 발췌

결합 없이 말해지는 것들은 저마다 실체, 양, 질, 관계, 장소, 시간, 놓임, 지님, 함, 당함 가운데 하나를 가리킨다.

그리스어

Τῶν κατὰ μηδεμίαν συμπλοκὴν λεγομένων ἕκαστον ἤτοι οὐσίαν σημαίνει ἢ ποσὸν ἢ ποιὸν ἢ πρός τι ἢ ποὺ ἢ ποτὲ ἢ κεῖσθαι ἢ ἔχειν ἢ ποιεῖν ἢ πάσχειν.

아리스토텔레스, 『범주론』 1b25-2a4· Categoriae, Oxford Classical Texts

목록 자체보다 목록의 형식이 중요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있는 것"을 한 덩어리로 세지 않고, 무엇에 대해 말해지는가에 따라 나눈다 [1]. 그중 첫째 자리인 실체만이 주어 자리를 독점하고, 나머지는 실체에 대해 서술된다.

예로부터 지금까지 늘 묻고 늘 막히는 물음, 곧 "있는 것이란 무엇인가"는 결국 "실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이다.

그리스어

καὶ δὴ καὶ τὸ πάλαι τε καὶ νῦν καὶ ἀεὶ ζητούμενον καὶ ἀεὶ ἀπορούμενον, τί τὸ ὄν, τοῦτό ἐστι τίς ἡ οὐσία.

아리스토텔레스, 『형이상학』 Z편 1028b2-4· Metaphysica, Oxford Classical Texts

이 문장이 하는 일은 물음을 좁히는 것이다 [2]. 존재 일반을 묻는 대신, 다른 것에 기대지 않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묻자는 제안이다. 오늘날 근본성 논의가 이 제안을 그대로 이어받는다.

논증 재구성

실체가 존재론에서 첫째 자리를 차지한다는 주장을 전제-결론으로 펴면 이렇다.

  1. 어떤 것 xx 가 다른 것 yy담겨 있다는 것은, yy 없이는 xx 가 있을 수 없다는 뜻이다. 붉음은 붉은 것 없이 있을 수 없다.
  2. 속성과 관계와 사건은 모두 무엇인가에 담겨 있다. 속성은 그것을 지닌 것에, 관계는 관계항들에, 사건은 그 사건을 겪는 것에 담겨 있다.
  3. 담겨 있는 것들만으로 이루어진 세계는 있을 수 없다. 담김의 사슬이 어딘가에서 끝나지 않으면 무엇에도 담기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게 되고, 그러면 담길 자리가 없다.
  4. 따라서 무엇에도 담기지 않은 것이 적어도 하나 있다.
  5. 무엇에도 담기지 않고 있는 것을 실체라 부른다.
  6. 그러므로 실체는 다른 범주들에 대해 존재론적으로 앞선다.

무게는 전제 3 에 실린다. 3 은 담김 관계가 무한히 내려가지 않는다는 주장이며, 이것은 논리적 필연이 아니라 형이상학적 가정이다. 이 가정을 근거지음의 언어로 다시 쓰고 검토하는 일이 b1-5 의 과제다.

반론과 재반론

반론 1. 다발 이론. 실체라는 것은 속성들의 다발에 우리가 붙인 이름일 뿐이다. 사과에서 붉음, 둥긂, 단단함을 차례로 빼면 남는 기체(基體)는 아무 성질도 없는 것이고, 아무 성질도 없는 것은 세계 안의 무엇이 아니다. 실체는 문법의 주어 자리가 존재론에 투사된 그림자다.

재반론. 강한 반론이고, 기체가 원리상 서술 불가능하다는 지적은 옳다. 그러나 다발 이론은 다발을 하나로 묶는 것이 무엇인지 답해야 한다. 같은 속성들의 다발이 서로 다른 두 곳에 있을 때 둘을 갈라 주는 것은 속성 목록이 아니다. 여기서 다발 이론은 시공간 위치를 끌어들이는데, 그러면 위치를 지닌 무엇이 다시 필요해진다. 논쟁은 결착되지 않았고, 이 단원이 요구하는 것은 자기가 어느 쪽을 택했는지 밝히는 일뿐이다 [3].

반론 2. 관계 우선. 현대 물리학의 대상은 내재적 성질을 거의 갖지 않는다. 전자를 특정하는 것은 질량과 전하와 스핀인데, 이들은 모두 다른 것과의 상호작용 방식으로만 규정된다. 그렇다면 관계가 먼저이고 항은 관계의 교차점에 붙인 이름이다.

재반론. 물리학의 서술이 관계적이라는 것과 세계가 관계적이라는 것은 다른 주장이다. 앞의 것은 우리가 무엇을 측정할 수 있는지에 대한 사실이고, 뒤의 것은 무엇이 있는지에 대한 주장이다. 앞에서 뒤로 가려면 측정 가능한 것만 존재한다는 전제를 더해야 하는데, 그 전제 자체는 물리학의 결과가 아니다. 다만 이 반론은 실체 우선 논증의 전제 2 를 곧바로 무너뜨리지는 못해도, 전제 3 이 말하는 "끝"이 개별자가 아니라 구조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연다.

반론 3. 사건 존재론. 세계의 기본 단위는 지속하는 사물이 아니라 일어남이다. 붕괴, 산란, 흡수는 사건이고, 입자는 사건들의 세계선을 뭉뚱그린 이름이다.

재반론. 사건을 기본으로 두면 개별화 문제가 옮겨 갈 뿐 사라지지는 않는다. 두 사건이 같은 사건인지 다른 사건인지를 판정하려면 참여자와 시각을 지정해야 하고, 참여자는 다시 지속하는 무엇이다. 사건 존재론은 이 순환을 끊기 위해 사건들 사이의 관계망만으로 참여자를 구성하려 하며, 그 시도가 성공하는지가 열린 문제다.

물리학과의 접점

이 절은 접점을 표시만 하고, 물리학의 결과를 형이상학적 결론의 전제로 쓰지 않는다.

  • 장 세기는 시공간의 각 점에 값을 주는 대상이다. 이 수학적 형식은 "점이 지니는 속성"으로도, "시공간 전체에 퍼진 하나의 실체"로도 똑같이 읽힌다. 형식은 두 독법을 가르지 않는다. 장 세기 항목이 형식 쪽을 맡는다.
  • 게이지 자유도는 서로 다른 장 배위가 같은 물리적 상황을 서술할 수 있음을 뜻한다. 이것은 "무엇이 실재하는가"에 대한 물리학 내부의 압력이지만, 그 압력의 방향은 관계 우선 쪽으로도 구조 실재론 쪽으로도 읽힌다. 읽기가 하나로 정해지지 않았다는 사실 자체를 기록해 둔다.
  • 에너지-운동량 텐서는 장에 에너지와 운동량을 귀속시킨다. 여기서 "장이 에너지를 가진다"는 서술은 실체-속성 문법을 쓰고 있으나, 그 문법이 채택된 이유는 존재론적 결론이 아니라 계산의 편의다.

세 항목 중 어느 것도 앞의 반론들을 결정하지 않는다. 결정한다고 쓰려면 트랙 C 의 근거 표기 규칙을 통과해야 한다.

연습문제

문제 1개념 진술형

"전자기장이 존재한다"를 네 어휘 각각을 주어로 삼아 네 문장으로 다시 쓰시오. 그리고 네 문장 가운데 어느 것이 서로 양립 가능한지 표시하시오.

해설

예시.

  • (실체) 시공간 전역에 퍼져 있고 자기 에너지를 지니는 하나의 대상이 있으며, 그것이 전자기장이다.
  • (속성) 시공간의 각 점은 벡터 값을 갖는 성질을 지니며, 그 성질들의 전체 분포를 전자기장이라 부른다.
  • (관계) 하전 입자들 사이에 성립하는 상호작용의 구조가 있으며, 전자기장은 그 구조를 표현하는 이름이다.
  • (사건) 흡수와 방출의 일어남들이 있으며, 전자기장은 그 일어남들의 규칙적 패턴이다.

속성 독법과 관계 독법은 양립 가능하다. 점이 가진 성질이 다른 점들과의 관계로만 규정된다고 말해도 모순이 아니기 때문이다. 실체 독법과 사건 독법은 그대로는 양립하지 않는다. 한쪽은 지속하는 담지자를 요구하고 다른 쪽은 그것을 거부한다.

흔한 오류는 네 문장이 같은 말의 다른 표현이라고 적는 것이다. 그럴듯한 이유는 네 문장이 모두 같은 실험 결과를 예측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측이 같다는 것은 경험적 동치이지 존재론적 동일성이 아니다. 두 이론이 같은 예측을 하면서 다른 것이 있다고 말하는 경우는 흔하다.

문제 2오류 진단형

다음 주장에서 범주가 어긋나는 지점을 찾고, 어긋나지 않게 고쳐 쓰시오.

힉스 장은 우주 어디에나 있고 질량을 준다. 따라서 힉스 장은 만물의 근거이며, 만물이 그것에 의존한다는 점에서 전통적 의미의 제일 실체에 해당한다.

해설

두 군데가 어긋난다.

첫째, "질량을 준다"는 물리학의 서술에서 힉스 장은 다른 장들과의 결합을 통해 입자의 질량 항을 발생시키는 역할을 한다는 뜻이다. 이것은 특정 물리량의 값을 설명하는 관계이지, 그 입자가 존재한다는 사실의 근거가 아니다.

둘째, "만물이 의존한다"에서 "제일 실체"로 넘어가는 단계에서 의존의 종류가 바뀐다. 물리적 의존은 값의 의존이고, 제일 실체가 요구하는 것은 존재의 의존이다. 앞의 것은 양적이고 부분적이며, 뒤의 것은 전면적이다.

고쳐 쓰면, (물리) 힉스 장과의 결합은 표준모형 안에서 페르미온 질량 항을 발생시킨다. (형이상학) 어떤 것이 만물의 존재 근거라는 주장은 별도의 근거지음 논증을 필요로 하며, 질량 생성 기제로부터 따라 나오지 않는다.

흔한 오류는 "준다"라는 낱말이 두 문장에서 같은 관계를 가리킨다고 보는 것이다. 그럴듯한 이유는 물리학이 인과적 어감을 가진 일상어를 전문 용어로 쓰기 때문이다.

문제 3반론 작성형

이 단원이 네 어휘를 "확정한다"고 선언한 것 자체에 대한 가장 센 반론을 만들고, 한 문단으로 답하시오.

해설

가장 센 반론은 이렇다. 어휘를 먼저 고정하면 그 어휘에 들어맞지 않는 존재자가 처음부터 시야에서 사라진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범주는 주어-술어 구조를 가진 그리스어 문장에서 읽어 낸 것이고, 그 문법을 공유하지 않는 서술 — 예컨대 양자장론의 연산자값 분포 — 을 네 칸에 억지로 넣으면 왜곡이 생긴다. 어휘 확정은 중립적 준비 작업이 아니라 이미 하나의 존재론적 선택이다.

답. 부분적으로 인정한다. 네 어휘는 세계의 목록이 아니라 논쟁을 진행시키기 위한 좌표계이며, 좌표계는 중립이 아니다. 그러나 좌표계 없이 진행된 논쟁은 같은 낱말로 다른 것을 말하는 상태에서 끝난다. 이 사이트의 선택은 좌표계를 쓰되 그것이 선택임을 매번 표시하고, 네 칸에 들어가지 않는 사례가 나오면 칸을 늘리는 쪽이다. 일원론처럼 실체의 수 자체를 쟁점으로 삼는 입장은 이 좌표계 안에서 오히려 선명하게 진술된다.

더 읽기

  • [1] 1b25 이하가 범주 목록의 원전이고, [2] Z편이 실체 물음을 다시 여는 자리다. Z편은 범주론의 결론을 그대로 유지하지 않으므로 둘을 대조해 읽는다.
  • [3] 은 속성을 보편자로 보는 현대적 정비를, [4] 은 자연적 속성과 인위적 속성을 가르는 기준을 다룬다. 두 글은 b1-4 와 b1-5 의 배경이 된다.

참고문헌

  1. Aristotle (1963). Categories and De Interpretatione. Oxford University Press.
  2. Aristotle (1924). Metaphysics. Oxford University Press.
  3. Armstrong, D. M. (1983). What Is a Law of Nature?. Cambridge University Press.
  4. Lewis, D. (1983). New Work for a Theory of Universals. Australasian Journal of Philosophy 61, 343–377. doi:10.1080/0004840831234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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